한국 기독교가 매를 맞는 이유 1부 (2007. 2. 3.)

한국 기독교가 매를 맞는 이유

내 아버지여!

이 나라와 인류는 어디로 가고 있습니까? 맡은 자들은 어찌 이리도 방치 해왔단 말입니까. 아버지에게 첫사랑을 맹세했던 종들은 다 어디에 있으며 그들의 사랑의 맹세가 고작 이 세상의 풍요와 자신의 이름 석자를 알리기 위한 거짓 맹세였단 말입니까. 그들의 고백도, 그 아름다웠던 기도와 찬양도, 다 거짓이었으며 결국 자신들의 목적을 얻어내기 위한 아부였단 말입니까. 아버지는 자식들에게 또 그렇게 속으셨나이까?

과연 아버지를 진실로 경외하고 섬길 백성과 나라는 어디에 있나이까?

왜 아버지께서 이 종에게 일찍부터 조국을 떠나라 하셨는지 알겠나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종이 끝까지 고집 부렸음을 용서 하소서. 저들은 도무지 깨닫고 고침을 받으려 하지 않는 자들이며 옛것에 안주하여 자신도 못 들어가고 남도 못 들어가게 하는 훼방꾼들일뿐입니다. 아버지여! 이 종이 고집을 부렸던 것은 어찌하던 하나라도 더 저 종들에게 전해 주기 위함이었나이다.

이 종은 오직 저들이 변화되길 원했나이다. 오직 아버지의 영광과 복음에 대하여 구부러지고 왜곡된 것을 다시 세우려고 증거 하였으며 또한 아버지께서 원하시는 아버지의 뜻 그대로를 목숨을 다해서 전했나이다. 그러나 저들의 강팍함이 저들의 참 지식을 보는 눈과 귀를 막고 스스로 어둠의 무지 속에 갇혔나이다.

아버지! 종들의 심령 속에 자리 잡았던 아버지의 성전은 하나하나 헐려나가서 이제는 안주 하실 곳이 없다고 말씀하신 것과 같이 아버지께서는 이제 또 어디로 가셔야 하나이까. 아버지께서는 2000년간 수많은 나라 나라들로 전전하시며 유리방황하셨나이다. 마치 이리저리 떠돌아다니는 노숙자들의 삶이 다름 아닌 아버지의 삶과 똑 같나이다. 자칭 자녀들이라고 하는 자들에게 속고, 이용당하고, 배신과 배척당함이 부모를 쳐내는 패륜아에게 당하듯 하셨나이다. 심히 죄송하고 죄송하여 얼굴을 들어 하늘을 우러러 볼 수 없나이다.

2000년전 유대인들은 주를 범죄자처럼 형틀에 묶고 손과 발에 대못을 박았지만 지금 저 패륜아들은 다시 주의 입술에다 대못을 박아 놓았나이다. 아버지! 주께서는 오래전에 입술에 대못이 박히신 채 이 종의 꿈속에 나타나 보여 주셨나이다. 그때 이 종에게 입술에 박힌 대못을 빼어 달라고 간곡하게 부탁하신 그 말씀이 지금도 생생하게 그 고통의 전율을 뼈 속 깊이까지 느끼고 있나이다. 이 종은 그날 이후부터 사도 바울이 다메섹에서 변화된 것처럼 그 패역함에서 변화되어 오늘까지 그 사랑 변치 않고 이어졌나이다.

내 아버지여!

아버지께서 이때를 위하여 준비시킨 바알에게 무릎 꿇지 않은 7000명의 용사들은 어디 있어 잠잠한지요. 저들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요. 지금까지 7년간 아버지의 말씀을 듣고도 자기 안일과 몸만 챙기는 자 들이였나이까? 그러고도 주께 충성과 목숨을 다해 섬길 것을 서원했던 자 들이었나이까?

그 충성이 성전 짓고, 성도 많이 끌어 모으면 충성이었나이까. 답답하고 답답할 뿐입니다. 내 조국에 의인 10명이 없어서 멸망하나이다. 이 종은 1200만명중 의인 10명만이라도 구하기 위함이었나이다. 이것이 이 종의 유일한 욕심이었나이다. 그러나 저들은 이종이 육신의 보이는 성전이나 확장하고 양떼들을 끌어 모아 부흥 발전시키려고 세상에 나온 줄 오해하고 있나이다.

아버지! 이 종은 아버지의 입술에 박힌 대못을 빼기 위해 왔을 뿐입니다. 그것이 아버지께서 이 못나고 천한 이 종을 선택하고 부르신 이유임을 아나이다. 이 종의 사명은 양떼들이 아니라 하나님께 부름 받은 주의 종들입니다. 그 주의 종들이 잘되어야만 기독교의 소망이 있기 때문입니다. 진실된 참 종 10명에게는 수십만, 수백만의 양떼가 있지 않나이까. 마치 이 종을 양떼들이나 강탈하고 빼앗으로온 강도처럼 생각지 말게 하소서.

세계는 지금 재앙과 환란의 시대로 돌입했나이다. 급하게 막을자들은 오직 하나님의 종들 밖에는 없나이다. 그러나 저들은 진리를 행함에 있어서는 소경으로 그저 ‘평화다 평화다’ 라고 거짓소리만을 발할 뿐입니다. 세계 처처에서 일어나는 재앙과 환란은 모두 하나님이 창세로부터 제정하신 진리를 지키지 않고 그 법칙에서 이탈해서 생긴 당연한 것인데 인류는 오히려 ‘하나님은 죽었고 없다’ 라고 큰 회의에 빠져 있으며 또 ‘사랑의 하나님이 왜 우리에게 평화를 주지 않고 침묵하며 가만 계신 것이냐’라고 반박하고 있나이다. 모두 하나님에 대하여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나이다.

기독교는 인류를 어찌 이 지경까지 방치했으며 이제 누가 저 인류를 어떻게 살려내야 하는지요. 아버지여! 답답할 뿐입니다. 과연 2000년간 주의 영광을 위한 기독교 성직자들의 열심은 무엇을 위한 열심이었나이까? 분명 주의 영광을 위하여 충성을 다하였다면 지금쯤은 적어도 모든 인류를 이 정도로 허망한 삶 속에서 방황하게 만들진 않았을 것입니다. 아버지여!

주의 말씀인 진리는 화평과 평화가 한자리에서 만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의 믿음인 의의 궁극은 화평이며 진리를 준행함으로써의 만남은 사랑인 긍휼입니다. 그런데 어찌 이리도 매정하며 사랑은 허울뿐이고 메말랐단 말입니까.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을 향하여서 진리인‘사랑’을 알리고 행하는 사랑의 기준이자 모델들입니다. 이 모델들은 각각 자기의 처소 곳곳에서 복음인 사랑을 실천하며 먼저는 가족 그리고 이웃에게 더 나아가 사회, 땅 끝까지 사랑을 실천하는 모델들입니다.

이렇게 그리스도인들이 실천하는 작은 사랑의 행위, 행위는 급속히 썩어져가는 인류의 부패를 막고 인류의 밝은 미래를 개척해 나가는 지름길로써 그것이 빛과 소금의 역할이며 또한 그리스도인의 사명이 아니겠나이까. 그러나 그리스도인들 특히 성직자들이 주의 계명인 사랑을 행하지 못함으로 말미암아 세상에 빛과 소금을 드러내지 못했기에 오늘날의 어둠과 썩고 부패한 세상을 만들어 낸 것입니다. 저들은 빛과 소금이 어떤 뜻인지도 모르고 있으며 오직 세속의 화려함인 명예와 부귀라는 어둠에 길들여져 있나이다. 입술로는 빛인 사랑을 증거 하지만 행위로는 육체인 어둠을 행하나이다.

아버지! 이 시대만큼 심령 심령들이 피폐되고 참혹하며 비참한 시대가 있었나이까. 저들은 풍요와 안락과 명예의 노예가 되어 세속에 눈이 뽑히고 손발이 꽁꽁 묶여서 줄줄이 세상으로 끌려가고 있나이다. 빛의 옷을 벗고 세상 어둠에 속한 거짓과 외식의 호화롭고 화려한 옷을 입고 마음껏 폼을 내고 있지만 더러움과 추함에 민망하고 어이없을 뿐입니다. 어찌 저리도 허망함을 행하며 어찌 저리도 허망함을 쫓는지요

아버지여! 언제쯤 이렇게 주의 종들과 백성들이 세속의 포로로 줄줄이 끌려가는 행렬이 끝나겠나이까. 저들은 살아서 먹고, 마시고, 즐기나, 실상은 썩은 고기 덩어리에 불과한자들입니다. 차마 눈을 뜨고 보기 민망하여 귀를 막고 외면하나이다. 2000년전 광야에서 외치던 우리 주의 말씀은 저들의 목에 장식용으로 치장되어 있을 뿐이며 단지 몇 가지 율법 준행만으로 자신의 도리와 책임을 완수했다고 자족하는 자들입니다. 그 행위는 자신은 물론 하나님까지 속이는 기만행위입니다. 그것이 그렇게 유대인들에게 책망하셨던 저주 받은 외식주의가 아니겠나이까.

주일 성수와 약간의 봉사와 희생, 헌금, 구제, 기도로써 자신이 하나님을 경외하고 섬기는데 다했다고 자족하게 함으로써 ‘이 정도면 되지 않았을까, 나도 할 만큼 했다’ 라는 만족이 오만과 교만을 불러 들여서 오히려 하나님과 멀어지게 하나이다. 항상 그리스도 신앙은 끝없는 희생으로 주어도주어도 항상 부족함이 발견되는 것이며, 하면 할수록 만족 보다는 허물과 항상 모든 것에 죄송함과 자신의 부족함으로 무엇이든 내 탓이고 정말로 정말로 미안하고 또 한편으로는 그 부족함 속에 끝없는 괴로움의 자책과 그 자책이 무언가를 얻는 소중함의 기쁨과 행복감에 사로 잡혀 자책과 만족의 행복감이 함께 공존하여 아버지의 계명인 사랑을 잡고 이루기 위해 더욱 심령은 애통하게 하시며 우리를 겸손으로 끌고 가나이다. 그래서 신앙은 시간이 흐를수록 교만이 힘을 못 쓰고 겸손 속에서 성장하여 지며 그 겸손은 남의 것을 받아들이고 순종으로 이어지는 것인데 지금의 그리스도인들은 시도 때도 모르는 어린 들나귀 새끼들과 같이 오만과 독선으로 천방지축이나이다.

오만은 전체를 보지 못하고 자신만을 기준으로 삼아 스스로 자신의 지혜와 지식으로 판단, 정죄의 자리에 앉아 만족해하는 유아적 신앙이며 이는 아버지의 채찍을 만나기까지는 도무지 자신의 부족과 허물을 스스로 인정하지 않는 자입니다. 오만은 강팍함을 낳으며 강팍함은 진리를 지킨다는 진리수호 명분의 가면으로써 사실은 이기주의가 본질입니다.

강팍함의 완성은 극단적 이기주의로써 이기주의는 세상의 끝이며 악으로 꽉찬 악의 충만 임을 알았나이다. 지금이 바로 아버지의 심판하실 그때입니다. 오직 자신만의 이익을 생각하는 이기주의는 악의 꽃으로써 이는 한여름 장마철 햇빛 없는 습하고 그늘진 곳에서만 자라는 독버섯처럼 선이 정지 되었을때만 심령에서 자라는 악의 꽃입니다. 이 꽃이 온 인류와 세상의 주의 종과 백성들 심령 심령에 만발했나이다. 그 이유는 기독교의 생명인 성령의 불이 꺼졌기 때문입니다.

성령은 세상의 모든 자녀들이 악으로 실족하지 않도록 영원히 함께 누구든지 부르짖고 찾는자에게 나타나 도와주시건만 성령이 소멸됨으로 말미암아 그 도움을 받지 못함으로 세상에 선은 정지되어 있고 대신 악으로 충만해져 악이 활개치고 있나이다. 세상이 악으로 충만할 때일수록 주의 종들은 성령의 충만으로 사랑을 내뿜어 내어 세상을 선으로 전이 시켜야만 하며 이것이 빛과 소금의 한 의무이자 책임일진데 그러한 주의 종들은 다 어디에 있단 말입니까. 마치 큰 건물에 화제가 나서 소방관은 출동했지만 그 불을 진화시킬 물이 한 방울도 없어서 그냥 바라보아야만 하는 소방관과 같이 어찌 주의 종들이 성령 없이 사명을 감당할 수 있겠나이까.

주의 종이란 자신이 싫든 좋든 그 심령에 성령의 불씨를 담고 있는 그릇들이며 그 불씨를 세상에 전이시키는 자들입니다. 마치 올림픽의 성화봉송 주자들과 같이 성령의 불을 들고서 목적지까지 산 넘고 물 건너 비바람 맞으며 운반하는 사람들이기에 절대 혼자서는 불가능하며 모두다 함께 참여하여 나가야만 하나이다.

이러한 성령의 불은 마가의 다락방에서 시작되어 사도들을 통하여 서구의 여러 나라들인 로마, 포르투칼, 스페인, 독일, 영국, 미국...등등을 거쳐 약 2000년 만에 한국에까지 끊기지 않고 이어져 왔었나이다. 그 성령의 불길은 끊기지 않고 세계를 모두 돌았어야만 했으며 미말에 두시기로 한 이스라엘을 제외한 모든 국가인 이방인들의 충만한 수가 그리스도인으로 변화되어 채워지면 마지막으로 제외 되었던 지금의 이스라엘에 도착하여 비로소 그들의 강팍하고 완고한 심령을 수 년 안으로 성령의 불로 불사를 것입니다. 우리가 그랬듯이 물과 성령으로 거듭난 이스라엘은 그때서야 아랍에게‘내 탓이요’ 하고 회개하며 아랍인의 심령 심령에 먹장처럼 시컴한 원한의 빗장과 저주의 두터운 벽을 뚫고 비로소 화해와 화합이 이루어지며 세계의 평화를 일구어낼 것입니다.

그때 비로소 유대의 선민사상인 우리 민족만의 하나님에서 비롯된 민족 우월주의인 시온주의 사상이 완전히 무너지고 하나님은 누구든지 믿고 부르짖는 자의 인류 만인의 하나님이심을 알게 될 것이며 독선과 오만의 민족 우월주의에서 벗겨질 것입니다. 그리고 전 세계 어느 민족에게나 팽배되어 있는 세계 평화의 절대적 장해물인 민족주의와 민족우월주의가 무너지고 세계만인 평등주의가 확실하게 자리 잡을 것입니다.

민족우월주의는 타 민족에 대한 차별성을 말하며 차별은 항상 국가간의 불화를 일으키는 폭탄의 도화선과 같나이다. 아버지여! 우리는 2000년 동안 세계의 곳곳에서 어떤 일들이 자행되어 왔었는지 세계의 역사를 통하여 확실하게 보았나이다. 세계 평화를 가로막고 있는 절대적 장애 요소는 모든 민족의 심령에 깊이깊이 자리 잡고 있는 민족 우월주의 입니다. 민족우월주의가 있는한 세계 평화는 인간의 어떠한 지혜와 노력으로도 허사가 될 것이며 그것은 이미 수 천 년전 바벨탑 사건에서 보았듯이 결국은 자신들의 목적에 부합하지 못함으로 뿔뿔이 흩어짐으로 항상 결론의 막을 내리나이다.

그러나 성령의 불은 우리의 심령에 잘못되고 굽어진 것을 바르게 하며 높은 것을 낮게, 낮은 것을 높게 하여 서로 평지를 만들어 우리를 공의와 평등으로 인도하며 인간의 죄와 악을 정화시키고 소멸시키는 불입니다. 그것은 죄악의 결과로 오는 인류 멸망인 재앙과 환란을 막고 인류를 죄악의 부패로부터 막아주는 방부제이며 또한 자신의 민족만이 최고라는 민족우월주의를 타파하고 인류 평화를 이루는 유일무이한 방법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들은 모두 성령의 운동성을 소멸시키지 말고 또 훼방하지도, 모독하지도 말며, 거역하지 말라고 공포하신 이유였나이다.

만약 기독교가 2000년간 한눈팔지 않고 충성스럽게 복음을 전했다면 성령의 불은 마치 마라톤 경기에서의 이어달리기와 같이 바톤에 바톤을 이어 받아 지금쯤 지구를 몇 바퀴는 돌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성령의 불이 2000년 동안 지구의 3/2도 채 못돌아 미국에서 이어받은 바톤을 한국에서 다음 주자에게 넘기지도 못하고 불은모두 꺼지고 온기만 약간 남아있나이다. 보소서! 아버지여!

한국에서 이렇게 성령이 소멸된 직접적인 외적 원인은 이단 논쟁이었나이다. 이단 논쟁은 교리의 잣대를 들여대어서 이단을 막아 내겠다는 명분이었지만 실상은 정통, 비 정통이라는 기득권 싸움이었나이다.

아버지여! 아버지께서는 분명하게 모든 죄는 죄사함이 있지만 성령과 관계된 것은 죄사함이 없다고 선포하셨건만 이단논쟁으로 말미암아 성령을 소멸시킨 한국 기독교의 그 죄가 하늘에 사무쳤나이다.

성령소멸로 말미암아 아직 복음을 듣지 못한 인류의 수많은 영혼들이 얼마나 목이 메이도록 아우성치며 절망 속에서도 알지 못하는 미래의 막연한 어떤 무언가를 소망하며 기다리고 있나이까. 그들이 알지 못하고 기다리는 소망의 실상은 그리스도의 영이신 성령으로 성령은 인류를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고 모든 인류의 영혼을 다시 살리는 생명의 원천이며 또한 모든 인류의 염원인 인류 평화를 이루는 유일무이함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성령의 불을 한국에서 꺼뜨려 버렸나이다.

성령의 불씨는 내 것이 아니라 그 불씨가 모여서 인류에게 전할 인류가 먹을 생명과 선의 양식이며 그것은 악을 막고 선을 행하게 하는 에너지 이나이다. 이러한 성령의 불을 깨뜨림으로 말미암아 지금의 모든 인류의 악의 극성을 막지 못하였으며 또한 미래의 악을 방비하지 못하게 만들었나이다. 따라서 인류의 생명인 성령의 불을 꺼버린 책임은 모두 한국 기독교 목회자들 특히 성령운동했던 목회자들이 담당해야만 하며 그 책임은 감히 두려워서 말로 형용할 수 없나이다. 아버지여! 심히 두렵고 두려울 뿐입니다. 저들이 어떻게 징계를 받을 것인가를 이 종은 보았나이다. 아버지의 진노를 보았나이다.

아버지여! 이미 하나님의 진노는 시작되어서 성령의 종들을 징계하셨건만 저들은 징계를 경히 여기고 무엇을 어떻게 잘못했는지 그 실태 파악조차 못하고 있나이다. 구원을 외쳤던 주의 종들이 왜 자신은 구원 받지 못하고 원치 않던 병으로 죽어가는 것인지요. 주의 종들의 쓰러짐을 보고서 양떼들은 오히려 잘 믿어도 별것 없더라 하며 수많은 회의에 빠졌으며 주의 품에서 빠져 나와 세상의 나락으로 추락하고 있습니다.

아버지여! 세상에서 자칭 영적이라 하며 성령을 외쳤던 종들이 왜 이렇게 원치 않는 지병과 병마로 죽어가는 것인지 그 이유를 분명히 저들이 알고 깨닫게 하소서. 또한 지금 당장 자신들에게 화가 일어나지 않는다고 오히려 자신의 신앙을 합리화 시키고 있는 저들의 무지몽매함을 용서하소서. 저들은 절대로 상한 갈대를 꺾어 내지 않으시고 가물가물 꺼져가는 등불이라도 끄지 않으시며 끝까지 긍휼과 성실하심으로 일관하시는 살아계신 아버지이심을 모르고 있나이다. 과연! 아버지는 긍휼하심이 원천이시나이다. 인생들에게 그 긍휼히 여기심으로 말미암아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시며 꺼져가는 심지를 끄지 않으신 것뿐이건만 왜 이리도 저들은 회개하기 바라는 아버지의 속마음을 모르는지요.

이 종은 이미 아버지께서 하신 말씀을 그대로 모두 저들에게 전했나이다. 이제 저들은 자신들이 뿌리고 심은 것을 거두어야 할 것이며 그 책임 소재를 각각에게서 분명하게 찾으실 것입니다. 곧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저들에게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나타내 보이심으로써 하나님을 경외함의 질서로 다시 회복하실 것이며 그것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목회자들을 통하여서 대대손손 자손들의 교훈으로 남기실 것입니다. 이것을 통하여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드나 우리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하며 한번하신 모든 말씀들은 점하나까지라도 다 이루고 성취되어짐을 알게 하소서. 아버지여! 제발 저들이 이 종을 통하여 전하는 하나님의 말씀의 진의를 깨닫기를 간절히 원하나이다. 내 아버지여! 저들을 아버지 품으로 돌리소서.

2007. 2.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