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기독교가 매를 맞는 이유 (2부)
아버지여! 아버지께서는 주의 종이라 하면서 육체로써 아버지를 섬기는 거짓된 자들에게 진노하시는 것을 만인이 다 알게 하소서. (참고 : 육체의 일은 현저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것과 호색과 우상숭배와 술수와 원수를 맺는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짓는것과 분리함과 이단과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갈5:19-21)) 아버지의 원수는 세상이라 선언 하셨나이다.
그 세상이라는 구성요소는 삼욕 곧 이생의 자랑,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이 삼욕은 육체를 관장하고 지배하며 조종하는 사단이나이다. 따라서 삼욕이 곧 사단의 형상이며 그 삼욕을 육체라 하나이다.
그래서 아버지는 인간과 함께 할 수 없는 결별사유를 육체 때문이라고 선언하셨건만 자녀들은 아버지의 원수와 함께 동거하고 간음하고, 짝하며 한시도 떨어진 적이 없었나이다. 그러면서 아버지를 사랑한다고 매일매일 무릎 꿇고 기도하지만 그런 자에게 아버지는 절대로 눈을 감으시고 침묵하시나이다. 그 이유는 자신을 성결과 거룩함으로써 아버지와 화평하지 못하고 아버지의 원수인 세상과 짝한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주의 종들이 하나님을 떠나서 세상의 삼욕에 쉽게 마음을 빼앗기고 자신을 던지는 것은 물과 성령으로 거듭났을때의 그 마음인 첫사랑이 퇴색되어 희미하기 때문입니다. 아버지의 원수인 세상의 삼욕을 충분히 이기고 쉽게 박차고 나올 수 있는 것은 오직 아버지의 첫사랑에 취하는 것 밖에 없나이다. 제 아무리 삼욕의 유혹이 강해 보이지만 그 첫사랑 앞에는 맥을 못추는 물젖은 토성만도 못한 것인데 어찌 저리도 허망하고 쉽게 아버지의 사랑을 저버리고 세속의 품에 안길 수 있단 말입니까. 아버지여! 첫사랑을 잃어 버린 것은 아버지에 대한 배신이며 배교행위입니다.
따라서 주의 종들은 첫사랑의 맹세를 심령 깊이 간직하고 세속의 수많은 유혹과 어려움 속에서도 정절을 지켜내야만 하나이다. 아버지와의 관계에 있어서 첫사랑을 간직한다는 것은 아버지 사랑에 대한 서로의 확증이기에 아버지는 이 첫사랑을 항상 나에게 확인하시고 확인하셨으며 또한 그로 말미암아 기뻐하시고 기뻐 하셨나이다. 보옵소서. 지금도 주신 첫사랑 그대로 흐트러짐 없이 간직하고 있나이다.
아버지를 만난 그날 고아처럼 버려졌던 이 종은 사랑하는 나의 아들아! 라는 단 한마디의 말씀 속에서 첫눈에 아버지임을 알았나이다. 아버지는 모든 위로와 사랑으로 수많은 상처를 어루만져 주셨고 이종은 다만 ‘용소하소서 두 번 다시 아버지 곁을 떠나지 않겠나이다’ 라고 회개하고 회개 했으며 울고 또 울었나이다.
아버지는 내가 섬겨야 할 주인이며 완전함임을 알았나이다. 지금도 아버지가 있기에 정말로 행복할 뿐입니다. 이 사랑을 어느누가 뺏을 수 있겠나이까. 어떠한 역경과 어려움 속에서도 나의 모든 위로요, 소망이신 주여! 수많은 삶의 고통과 아픔 속에서도 환한 소망의 길을 열어 보이시고 위로하시며 이 종을 감싸 안아주시어 일순간에 삶의 절망과 고통을 기쁨과 희락으로 위로 하셨나이다. 이렇게 우리 주와 함께 하는 것이 모든 인생들이 추구하는 행복이 아니겠나이까.
그러나 모든 인생들은 아버지와의 사랑을 떠나서 모두 자신의 소견대로 허망한 다른 곳에서 행복을 추구하나이다. 이 종이 확실하고 확실하게 증거 하는 것은 인생들이 추구하는 행복은 오직 아버지와 하나 될 수 있는 사랑 안에 있으며 그 사랑은 성령으로만 완성되어 진다는 것입니다. 사랑은 모든 인생들이 추구하는 완전한 행복의 종착역이며 또한 이 땅에 하나님 나라가 우리 심령에 나타난 천국,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곧 하나님이 우리에게 임하신 것입니다. 그 사랑이 우리 심령에 항상 폭포처럼 쏟아져 들어오기에 세상의 악과 죄가 감히 우리를 음해하지도 못하고 멀리서 기다리며 기회를 보다 돌아가나이다.
이 첫사랑을 잃어버려서 2000년간 하나님의 종들이 세속의 창과 칼에 심령이 뚫려 죽고 세상의 포로로 살고 있나이다. 첫사랑을 잃어버린 것이 이렇게 아버지와의 관계에 있어서 모든 문제의 발단이었나이다. 다윗 왕이 항상 이 첫사랑에 취해 있었기에 아버지의 사랑을 받았듯이 이 종의 승리도 오직 주의 은혜인 첫사랑을 유지 하였기에 승리할 뿐 아무런 공로 없나이다.
만약 아버지와의 관계에서 그 사랑이 배제된다면 이 종 역시 저들과 무엇이 다르겠나이까. 무화과 잎으로 치부만을 가리는 외식주의자들과 같이 사명이라 해도 의무일 뿐 그곳에는 생명력이 없고 타성에 젖은 형식과 요식 행위의 말라비틀어진 볼품없는 행위만이 나오며 모든 것이 게을러지고 트집과 불평과 불만으로 천박하고 추하게 변하여져서 세상을 탐할 뿐입니다. 그래서 주의 종들은 매일 매일의 삶 속에서 오직 주의 말씀과 사랑의 계명에 목숨을 걸고 삼욕인 육체와 싸워서 첫사랑을 지켜내고 보존시키려 목숨을 다 바쳐야 하는 것입니다.
아버지여! 한국의 목회자들이 사랑에 거하지 못하고 육체로 변해 세상 사람처럼 사는 것이 이미 죽은 사망한 것임을 알게 하소서. 그 이유는 육체를 가지고는 영원히 아버지를 만날 수 없으며 육체를 버려야만 아버지와의 사랑이 회복되기 때문입니다. 또한 아버지의 영이신 성령은 마음이 청결한자 외에는 절대로 보아도 보지 못하고, 들어도 듣지 못하나이다.
하나님은 자비한자에게는 주의 자비하심을 나타내시며, 완전한자에게는 주의 완전하심을 보이시며, 육체의 속성을 배제하지 못한 사특한자에게 있어서 주의 음성은 항상 사특함과 주의 거스리심을 보여 주시나이다. 그래서 거짓 선지자가 배출되는 것이옵나이다.
삼욕은 마귀의 형상입니다. 특히 ‘영적 영적’ 하는 종들이 육체의 요소의 본질인 삼욕을 버리지 못한 것이 우상숭배이며 그 우상숭배 함으로써 아버지의 뜻을 제멋대로 이해하고 자신의 정욕에서 우러나오는 것으로 하고 있었나이다. 그 결과 복음이 변질되고 오류와 왜곡이 심각하나이다. 이는 모두 첫사랑을 버린 결과이며 그 사랑을 유지하지 못하고 쉽게 버린 이유는 양심의 그릇이 잘못되었기 때문입니다.
주의 종과 백성들은 모두 양심으로 하나님을 만나야 하는데 그 양심은 항상 육체의 거짓을 걸러내고, 그 출입을 차단시키고, 위험을 경고하는 것인데 그 양심의 구조가 잘못되어 모두 육체인 자신의 유익 쪽으로만 길들여져서 깨지고, 터지고, 구부러져 있나이다. 우리들의 양심은 주께서 좌정하시는 지성소이며 성전으로써 하나님의 사랑을 유지하고 보관하는 사랑의 그릇입니다. 양심의 그릇이 깨지면 그 사랑은 지속될 수 없습니다. 따라서 양심의 그릇이 깨지고 터지고 구부러져 잘못되어 있었기에 당연히 몇일 또는 몇달 못가서 성령의 불은 꺼져 버리고 소멸되는 것입니다.
어둠은 주의 종들이 양심을 밝히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양심의 빛은 다름 아닌 사랑 (사랑은 오래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투기하는자가 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무례히 행치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치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지 아니하며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 (고전13:4-7)) 이며 이것이 세상의 빛이었습니다. 주의 종들은 이렇게 세상의 육체의 어둠을 사랑의 빛으로 묵묵히 지킴으로써 빛을 밝히는 것입니다.
그 빛이 있을 때만이 우리 아버지를 영접하고 우리 주와 화목하며 교통할 수 있도록 길을 밝게 밝히는 등불이며 이 불이 꺼지면 아버지께서 절대 찾아오시지 않는 것인데 참으로 답답하옵나이다. 오직 답답하셨으면 이렇게 무지하고 모자라고 어리석고 소경이었던 이 종을 찾으셨겠나이까. 세상의 누구도 아버지께서 깨우지 않으면 일어날자 아무도 없습니다. 저들에게도 이 종에게 주셨던 은혜를 주옵시고 제발 저들이 깊은 잠에서 깨어나게 하소서.
멀리서 듣기로는 한국 기독교가 아버지 앞에 회개는 해야 하는데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총체적 회개를 찾지 못하고 우왕좌왕 하나이다. 한국 기독교는 마치 수명을 다한 자동차처럼 한두 군데를 고친다고 되는 것이 아님을 저들은 모르고 있나이다.
7년간 수 십 편의 메시지마다 무엇이 잘못되었고 어떻게 해야 할지를 이미 다 기록했으며 또 '양심메시지' 편에다 모두 전했습니다. 이 민족에게 더 이상 무엇을 전해야 하겠나이까. 자녀들에게 있어서 두려움은 방종과 죄악을 막는 파숫꾼이나이다. 그러나 어찌된 일인지 이들은 하나님의 두려움을 전혀 모르는 백성들입니다.
아버지여! 바라옵기는 저들이 새 심령인 물과 성령으로 거듭났던 그 순간의 첫 사랑의 양심으로 돌아가게 하옵시며 성령의 불을 소멸시킨 것에 대하여 진실로 질실로 통회하고 회개하게 하옵소서. 첫사랑으로, 오직 첫사랑의 회복함으로 돌아가게 하소서. 첫사랑으로 회복하지 못하는 회개가 무슨 소용이 있겠나이까. 그리고 그 죄가 얼마나 크고 막중한지 알게 하소서.
성령의 불씨는 내 것이 아니라 그 불씨는 아버지의 것입니다. 인류가 먹을 것입니다. 인류의 생명이었나이다. 그 불씨 하나하나가 모여서 인류에게 전할 인류가 먹을 선의 양식이었으며 그것은 악을 막고 선함을 행하게 하는 에너지였나이다. 그러나 성령의 불을 소멸시킴으로써 말미암아 지금의 모든 인류의 악의 극성을 막지 못하였으며 또한 미래의 악을 방비하지 못하게 만들었나이다. 그래서 한국 기독교 목회자들이 인류를 책임져야 한다는 이유이며 인류는 그 배상을 한국 목회자들에게서 찾을 것입니다. 그 짐을 감당하기가 심히 무거울 것이며 어찌 그 고난의 짐을 저들이 다 질지 모르겠나이다.
아버지여! 제발 저들이 더 늦기 전에 회개하게 하옵소서. 회개하는 백성은 망하는 법이 없습니다. 성도들에게 회개가 있다는 것은 환란의 도피성이자 유일무이한 비상탈출구 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절대 절망은 없는 것이며 항상 살길을 열어 놓으신 것입니다.
주를 향하여 부르짖는 자를 외면치 않으시는 나의 주여! 인생의 삶이 어둠과 각박함 속에서도 넉넉함은 누구에게나 공정하고, 공평하게, 공의롭게 회개의 비상구가 항상 열려 있기 때문입니다. 진실로 주를 만나려고만 한다면 언제든지 만날 수 있으며 그것은 모두 자신의 선택과 결정에 달려 있나이다. 이것이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따라서 이 민족을 유대 민족 같이 강팍하게 하지 마소서. 우리를 너무 오랫동안 외면, 방치하지 마소서. 종들의 심령 심령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모시고 함께 동거 동락할 아버지의 집 곧 성전들입니다. 그러나 지금부터는 성령의 불을 소멸시킨 자들을 찾아서 심판하시는 심판의 때 입니다. 성령을 소멸시키거나, 성령을 거역, 모독, 훼방한 죄는 그 댓가가 엄격함을 알아야 다시는 그런 일이 없도록 경계할 것입니다. 그 징계의 심판이 끝나면 우리를 새롭게 변화시키소서.
진실로 진실로 회개하는 종들은 그 회개로 강팍함을 녹여내게 하옵시며 모든 종들이 회개로써 승리하게 하옵소서. 회개와 징계와 연단이 끝나면 정금같이 새롭게 변하게 하셔서 한국 기독교를 반석위에 다시 세워 주소서. 한국에서 꺼져가는 성령의 불을 다시 지펴서 인류를 향하여 다시 출발하여 인류를 구원하게 하소서.
할렐루야! 할렐루야!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드나 우리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 하나이다.
세세토록 영광홀로 받으소서. 아 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