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기독교와 목회자님들께 다시 한번 문안드립니다.

사도 바울이 하나님께 저주를 받는다 할지라도 자국의 민족인 유대에 먼저 복음을 전하겠다는 조국을 사랑하는 마음 그대로 이종 역시 오직 은혜 가운데서 그리스도의 복음을 위해서는 사도바울과 똑같은 각오와 결심을 갖고 전하고자 하는 바였습니다. 이 시대에 교회들에게 하나님께서 무엇을 원하시는지 1999년 12월부터 약 5년간 충분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습니다(참조).

(참조)

1. 이 땅에는 종말이 없다 (1999.12.24)

2. 휴거는 없다 (1999.12.24)

3. 기독교 실패의 원인[1] (1999.12.24)

4. 기독교와 동양철학의 차이점[1] (1999.12.24)

5. 양의 탈을 쓴 과학문명 (1999.12.24)

6.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 (2000.01.01)

7. 나를 또 다시 십자가게 못 박으려느냐! (2000.01.29)

8. 예수재림은 성령강림이다 (2000.02.10)

9.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의 뜻은? (2000.03.06)

10. 구원. 생명. 영생의 참뜻은 (2000.03.24)

11. 참 진리를 찾는 자들에게 (2000.04.04)

12. 예수의 피는 성령이다 (2000.04.14)

13. 진리란 무엇인가? (2000.05.08)

14. 교회는 성도를 이렇게 가르쳐라 (2000.05.29)

15. 빛. 소금은 성령이다 (2000.06.17)

16. 죄사함과 보응 (2000.07.12)

17. 성령없는 죄사함은 없다 (2000.08.10)

18. 성서와 교리 (2000.09.08)

19. 믿음이란 (2000.10.14)

20. 믿음의 본질과 대상 (2000.12.14)

21. 믿음과 지식의 상호관계 (2001.01.20)

22. 믿음과 순종 (2001.02.24)

23. '의'(믿음)의 의미 (2001.03.22)

24. 삼위일체의 의미와 신비 (2001.04.30)

25. 삼위일체의 비밀 (2001.05.22)

26. 성서에서 말하는 적그리스도,. 이단, 미혹하는자란...? (2001.06.25)

27. 기독교란 어떤 종교인가? (2001.10.08)

28. 시인, 임하심, 교훈의 진정한 의미 (2002.09.15)

29. 새 하늘과 새 땅의 재해석 (2002.10.21)

30. "이 세대가 지나가지 전에 이 일이 다 이루리라"라고 하셨는데...왜! (2002.11.21)

31. 예수께서 주신'새 계명'이란? (2003.02.06)

32. 짐승의 수666과 우상숭배 (2003.10.03)

33. 그리스도인의 양심이란? (2004.02.04)

34. 두 증인 (2004.10.22)

도서명 : 기독교의 몰락과 성서해석의 오류 (출판사 : 삶과 꿈)

나의 조국 대한민국은 율법 기독교의 종주국이 아닌 세계의 영의 종주국입니다.

따라서 유대민족이 율법을 관장했다면 한국은 영적을 관장해야만 합니다. 이를 위하여 오랜 역사를 통하여서 하나님께서는 모든 준비를 하셨던 것으로 한국은 그동안 수 천년을 통해서 불교, 유교, 기독교...등 다양한 종교들을 경험하고 그 경험을 통하여서 각 종교의 허와 실인 종교적 지식이 충분히 축적되어 있는 나라입니다.

불교와 유교가 몰락한 이유가 무엇이었습니까. 그것은 탐욕이었습니다. 탐욕은 악의 재료로써 인간은 그 재료를 가지고 권력집권, 명예...등의 여러 모양을 만들어내며 인류의 역사를 추하게 만들어 왔습니다. 곧 몇 몇 사람의 탐욕이 자신들의 목적을 위하여서 분리를 가져왔으며 분리는 대립과 반목의 연속이었습니다.

이와 같이 모든 종교를 집어삼키고 잠식한 미끼가 탐욕으로 기독교 역시 탐욕으로 넘어간다면 다른 종교보다 나은 것은 무엇입니까. 기독교의 탐욕은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빙자한 우상 숭배행위로서 목회자들은 탐심인 3욕을 극복하지 못한다면 자신의 영광만을 섬기는 철저한 우상숭배자에 지나지 않을 뿐입니다. 이방종교들이 고상한 이론은 많이 있지만 절대 극복하지 못한 것이 세상의 구성 요소인 3욕(이생의 자랑, 안목의 정욕, 육신의 정욕)입니다.

그러나 기독교는 모든 종교가 이루지 못하는 것을 성령의 능력으로 인간의 약점들을 완전히 극복하며 무엇이든 해내는 불가능이 없는 능력의 종교입니다. 이와 같이 성령으로 인간의 탐심인 3욕을 극복한 것을 구원이라고 하며 이것을 극복하지 못하면 3욕에게 잡혀 있기에 구원 받았다고 할 수 없습니다. 기독교는 이 관문을 통과해야만 비로소 참 기독교가 시작할 수 있는 출발점입니다. 과연 오늘날 한국기독교의 목회자들은 탐욕에서 자유롭다고 할 수 있습니까. 아니면 탐욕의 노예입니까? 탐욕은 성직자들을 영적소경으로 만드는 절대적 요인으로써 사실을 사실대로 보지 못한 결과는 지금의 기독교를 만들었습니다.

한국기독교는 1960-1980년대 성령운동으로 말미암아 절정을 이루어 양적으로는 많은 부흥이 일어났지만 어찌보면 부흥하지 않았던 것만 못한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곧 인간의 욕망이 어디까지 갈수 있는지는 한국 기독교에서 일어났던 신흥종교들을 통하여 그 위험성을 충분히 알 수 있는 것으로 만약 어느 목회자에게 하나님의 큰 능력과 성령의 지식을 준다면 감당하지 못하고 박태 , 문선명...등 신흥종교가 걸어갔던 길을 그대로 걸어 갈 것입니다. 처음은 충성스럽겠지만 탐욕이 제거되지 않는 상태에서는 조금씩 변질되어 시간이 지나면 누구나 부패해지는 것입니다. 부패를 막기 위해서는 스스로들이 목숨을 버리는 순교가 매일 매순간 이루어져야만 합니다.

단적인 예로 지금 한국 기독교를 이끌고 있는 교회들의 성전 건축 대형화는 과연 이 시대에 하나님이 원하고 계신 것인지 아니면 자신의 명예 때문인지 잘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성전 건축의 대형화가 과연 덕스러운 행위인지 세계를 돌아보십시오. 하루 1달러 가지고 사는 사람이 얼마나 있는지... 덕스러움이란 상대의 형평성을 맞추고 상대의 수준에 맞추어 불화와 불만이 일어나지 않게 하며 이웃과 상호관계를 아름답고 보기 좋게 이어주는 행위의 총칭입니다.

어린시절 방학이 되면 시골 할아버지 집에 놀러갔습니다. 그 지역에서는 풍요롭게 사는 집인데 매일 보리밥만 주길래 할아버지에게 창고에 저렇게 쌀이 많은데 왜 매일 먹기 싫은 보리밥만 먹냐고 여쭈어 보았더니 할아버지께서 하시는 말씀이 우리만 매일매일 쌀밥 먹으면 지금 보리밥도 못 먹는 사람들도 많은데 남이 어떻게 생각하겠느냐고 꾸중을 하시는 것이었습니다. 어릴 때는 도저히 이해를 못했지만 장성하고 나서야 그것이 풍요로움 속에서도 이웃과의 형평성을 서로 맞추어 어려움을 함께 짊어지고 나가는 우리 조상들의 덕스러운 평등정신임을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만약 대형 성전 건축이 꼭 필요하다면 다른 덕스러운 방법이 얼마든지 있는데도 굳이 호화스러운 성전건축을 하는 행동은 수많은 목회자들에게 잠재된 3욕의 탐심에 불을 지르는 행위일 뿐입니다. 모든 목회자들치고 그런 욕망과 욕구가 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러나 사도바울이 성전은 건물이 아니라 마음의 성전임을 가르치고 있는 이유가 무엇인지를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고전3:16). 한국 기독교는 탐심인 3욕부터 벗어나도록 회개해야만 하며 또한 언제부터인가 전국 방방곡곡에 바다에 있어야 할 배가 왜 산에 올라가 있는지를 깨달아야 할 것입니다. 이제 한국 기독교가 영적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새롭게 거듭나지 않으면 안됩니다. 언급했듯이 한국은 세계의 영의 종주국으로써 한국의 목회자들이란 세계의 기독교를 짊어져야 하는 사명을 부여받은 사람들입니다. 이렇게 막중한 책임을 부여 받고도 왜 잠을 자고 있는 것입니까? 지금 세계의 정세를 둘러 보십시요. 세계 처처에서 일어나는 모든 불행한 일들의 결과는 과연 누구의 책임 입니까. 그것은 기독교 국가들의 책임이며 특히 영적 종주국인 한국 목회자들의 완전한 책임임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그 몫을 분명히 찾고 계십니다(두증인 메시지 참조).

그리스도인이란 율법적으로는 세상에 나가 사랑을 행하는 자들입니다. 오늘날 세상의 사랑이 식고 이기주의가 팽배해진 이유는 사랑에 대해서 보고 듣지도 못해 보았기에 사랑이 무엇인지 사랑의 용도가 무엇인지를 그리스도인들로부터 전혀 소개 받아 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목회자님들이 잘 알다시피 그리스도인이란 내가 스스로 주를 선택하고 영접해서 그리스도인이 되었다고 해서는 안됩니다. 예수그리스도의 허락이 없으면 아무리 복음을 들어도 듣지도 못하고 보아도 보지 못합니다. 만약 나에게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이 겨자씨만큼이라도 있다는 것은 곧 선택을 받은 것이며 그것은 부름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부름이란 그리스도를 위하여서 십자가의 죽으심 같은 삶을 살아서 세상에 철저한 희생의 본, 사랑의 본을 나타내라는 사랑으 모델들인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날의 그리스도인들은 자신의 축복으로만 만족하고 그 축복의 풍요로움으로 세상을 즐기기만 할 뿐이지 이웃을 위한 희생이 무엇인지를 알지 못합니다.

한국기독교는 그동안 이러한 하나님의 뜻과는 전혀 무관하게 독자적인 신앙을 해왔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습니다. 그 결과 나름대로 죽도록 충성을 했다고 했지만 하나님께서는“나는 너희들을 모른다”라고 하시고 계신 것입니다(마7:21-23). 이것이 현재 한국기독교와 하나님과의 관계임을 명심해야만 하며 이는 회개를 통하여서 회복시키지 않으면 안됩니다.

다시 한번 말씀드리지만 이 종이 마음만 먹으면 몇만명 정도 부흥시키는 것이 문제이겠습니까. 그러나 지금까지 보다시피 이 종이 원했던 것은 오직 이 땅의 목회자, 성직자들께서 교회와 성도들을 잘 이끌어 주시기를 원했던 것 이외는 아무런 사심 없습니다. 그 동안 5년간의 메시지는 한국기독교의 분란과 분리를 하기 위함이 아니라 영적성장을 위하여 조금이라도 돕기 위하여서 하나님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전해왔습니다. 왜 하나님은 한국기독교에 영적 복음 전하는 것을 반대하고 계시는 것일까요?

사도행전13장 46절에 “바울과 바나바가 담대히 말하여 가로되 하나님의 말씀을 마땅히 먼저 너희에게 전할 것이로되 너희가 버리고 영생 얻음에 합당치 않은 자로 자처하기로 우리가 이방인에게로 향하노라”

안타까움에 눈물을 흘리며 이제부터 참으로 전해야 할 영적 말씀은 너무나 많지만 하나도 전하지 못하고 작별을 고합니다. 그동안 수많은 목회자님들의 성원과 격려에 감사드리며 너무나 많은 아쉬움은 있지만 이제 남은 몫은 한국 교회 목회자님들의 몫으로 남기고 떠납니다. 많은 교회들의 영적성장과 무궁한 발전이 있기를 축원하는 바입니다.

할렐루야! 세세토록 홀로 영광 받으소서.

2006. 9. 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