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기독교 목회자님들께 멀리서 문안 인사드립니다.
하나님의 눈물의 편지를 전한지 어언 7년이 지났습니다. 그 눈물의 말씀은 이 시대의 종들에게 하나님의 한과 소망과 바램, 부탁, 책망, 질책...등을 전하고 있습니다. 메시지를 기록하면서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절규를 깊이 깨닫게 되었으며 우리가 하나님의 의도에서 얼마나 빗나갔는지, 또한 인간들의 연약함과 한계를 절실히 느꼈습니다.
그동안 한국 기독교는 얼마나 변했는지요. 교계 소식은 멀리서 나마 간간히 듣고 있습니다. 떠날 때는 두 번 다시 조국에 대한 애착을 버리고 복음에만 정진하리라고 다짐하고 다짐해 보았지만 무엇이 그다지도 이 종의 마음을 간절하고 애타게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가난하게 살던 처녀가 큰 부잣집으로 시집가서 풍요로운 생활을 할수록 마음 한 구석에는 가난에 찌든 친정 부모님과 어린 코흘리개 형제들 생각으로 이것도 주고 싶고, 저것도 주고 싶고, 온통 주고 싶은 생각으로 괴로워하는 것처럼 나라를 생각하면 외면하기에는 너무 큰 괴로움에 다시 몇 자 적어 보냅니다. 한국 기독교는 하나님의 소망이십니다. 따라서 목회자님들은 가던 길 멈추고 한번쯤은 귀 기울이고 돌아보아 주시기 바랍니다.
한국 기독교가 가장 먼저 해결하고 풀어야할 숙제는 이단 논쟁이며 이단논쟁의 가장 큰 병폐는 기독교 신앙을 획일화 시켜 놓은 것입니다. 진리 증거는 마치 어린아이에게 큰 산을 보여주며 그림을 그려 보라고 하면 어떤 아이는 산 전체를, 어떤 아이는 산의 특정 부분을 또 어떤 아이는 바위, 계곡, 소나무...등 아이들은 자신들이 본 그대로 각자의 도화지에 산을 표현해내는 것과 같습니다. 어느 것이 옳고 어느 것이 틀린 것입니까.
교리는 그림을 그리는 아이들처럼 제각기 자신의 받은 은혜대로 표현해 낸 것뿐인데 그러한 교리를 가지고 자신의 것만이 옳다고 신앙의 획일화를 시켜 놓은 것은 서로가 서로에게 불신과 반목의 대립을 주어 영적으로 진입하려는 그리스도의 핵심적 터전인 믿음을 파괴하기 위한 철저한 사단의 계략에 넘어간 것입니다.
이제 한국 기독교는 자기 것만이 옳다라는 편협과 폐쇄적인 신앙의 독선에서 빠져 나와 진리를 좀더 넓게 바라보는 시야를 가져야 할 때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우리 목회자들이 영적으로 거듭나야 하며 영적으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완전한 믿음에 도달해야 하고 또한 완전한 믿음은 사랑으로 진입해야만 도달할 수 있습니다.
사랑은 그리스도인들의 삶 속에서 대체적으로 희생, 용서, 화합, 진실의 열매로 나타납니다. 하루하루의 삶 속에서 무엇이든 희생, 무엇이든 용서, 무엇이든 화합과 화목, 무엇이든 진실하며 사랑 외에는 모든 것을 불순물로 여기며 철저하게 자신을 관리하고 지탱해 나가야 합니다. 목회자들은 이 땅에서 그렇게 오직 하나님 말씀과 사랑의 행위로써만 세상의 빛과 소금의 역할을 완성시켜야 하는 사람들입니다.
세상에서 어둠의 극성은 빛이 없기에 일어나는 것으로 목회자들은 세상의 매일 매일 쏟아져 나오는 폭력, 살인, 강도...등 사회의 어두운 사건, 범죄들을 보면서 과연 얼마나 내 책임이라는 죄책감속에 사로잡혀 있으며 또한 사건 범죄들 하나하나를 괴로워하며 매일 밤을 눈물의 기도로 보내고 있는지요? 또한 내가 기도를 쉬는 죄로 정치, 경제인들의 실수로 국가가 이런 곤란과 어려움까지 이르도록 방치한 것에 대한 처절한 죄책감은 없는지요? 과연 우리는 그들에게 참된 지혜가 이르도록 얼마나 기도했습니까? 세상의 모든 일들은 당사자들의 부주의로 발생한 것이지 내 자신과는 관계없다고 본다면 그것은 우리 목회자들 양심의 자세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세상의 모든 일들이 나의 문제처럼 양심에 와 닿지 않는 것은 사랑을 방해하고 차단시키는 이기주의 때문입니다. 이기주의의 어미가 탐심이며 죄악의 종합된 종착지는 냉소주의 입니다. 냉소주의의 팽배는 인류의 재앙으로 종말을 고하는 것입니다. 이기주의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차단시키는 방해요소이며 냉소주의는 영적신앙에 있어서 사랑의 완전히 반대되는 실체로써 죄악의 종합된 총체이며 우리 목회자들을 소경에 이르도록 만듭니다.
따라서 우리 목회자들만큼은 이기주의에서 반드시 벗어나야 합니다. 이기주의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면 그것은 마치 자식이 홍수로 강물에 휩쓸려 떠내려가고 있는데 속수무책으로 바라만 보면서 하는 말이 ‘그러게 조심하지’ 라고 남의 일처럼 혀 차고 있는 부모와 다름없는 냉혈적인 목회자들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러면서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을 섬기는 종의 사역을 다했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가정의 평화와 행복은 부모의 수고와 노력에 달려있듯이 세상은 목회자들의 간절한 소망을 담은 진실된 믿음의 기도에 달려 있습니다. 다시 말해 세상의 평화와 안녕을 간절하게 소망하며 그 소망을 자신의 심령에 묻고서 호흡한번마다, 손짓한번마다, 발걸음 걸음마다 응축시킨 소망을 절대자에게 토해내듯이 간구하는 것입니다. 또한 인류와 나라의 죄악을 내 문제처럼 처절하게 회개하여 세상을 정화시키고 항상 모든 일에 오로지 하나님을 찾는 심령으로 항상 채워져 있어야합니다. 그럴 때 인류에게 미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목회자들이 그 책임을 다하지 못할 때 하나님께서는 그 책임을 목회자들에게서 한 홀이라도 남김없이 다 찾으십니다.
보십시요. 나름대로 하나님께 충성을 다한 종들이 왜 세상 사람들과 다름없이 지병으로 죽어가야 하는 것입니까? 그것이 평생 부르짖었던 구원이었습니까? 그러한 것을 보고 오늘날의 성도들은 지금의 서구 기독교가 그랬듯이 하나님을 잘 믿어도 별거 없더라하며 회의와 혼란에 봉착된 것입니다.
이와 같이 세계가 기독교를 포기하고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버리고 과학을 신봉하게 만든 요인은 무엇입니까. 수많은 요인이 있지만 그 중 하나가 목회자들의 풍요로움 입니다. 이기주의가 하나님과의 관계를 차단시키는 방해요소라면 풍요로움은 그리스도 신앙을 썩게 만드는 요소입니다. 풍요와 안락은 곧 바로 신앙의 게으름을 탄생시키고 시간이 흐를수록 기도와 회개가 다 귀찮아지며 신앙은 조금씩 녹슬어 가서 결국은 생명을 잃어버리는 것입니다.
서구 기독교가 신앙의 생명을 잃어버리고 쇠퇴의 길을 걸어간 것은 밀려오는 풍요를 막지 못하고 조금씩 풍요와 안락에 젖어들었던 것입니다. 물론 그들도 나름대로는 검소했지만 세계 모든 국가의 평균된 생활수준의 기준으로 볼 때는 너무나 풍요로움이었습니다. 풍요로움이 죄라고는 할 수 없습니다. 목회자들에게 물질축복은 당연히 주어지는 권한이며 그 권한의 사용여부는 자신이 자 롭게 선택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풍요 앞에는 누구도 신앙을 지켜낼 수 있다고 자신할 수 없으며 누구도 섰다라고 장담 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목회자들은 스스로 그리스도 신앙의 독소가 될 수 있는 풍요와 안락을 멀리 하고 성서의 교훈처럼 약한 것, 능욕, 궁핍, 핍박, 곤란을 기뻐하며 그런 것들과 항상 익숙하고 친하게 지내야 합니다. 이것이 신앙을 지키는 최고의 명약입니다.
목회자의 생명은 사명감입니다. 따라서 어느 목회자나 하나님으로부터 부름을 받았을 때의 첫 사명의 각오를 잊어서는 안 됩니다. 그 당시 사명감인 결단과 각오는 하나님의 것으로써 하나님의 능력으로 무장되어졌던 것입니다. 그 초심을 첫사랑이라고 합니다.
첫사랑은 주의 뜻이라면 주저함 없이 무엇이든 순종하며 죄, 악, 탐욕을 즉각적으로 버리고 태워버리는 이글이글 타오르는 정열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 정열은 내 심령에서 항상 주를 향한 열정으로써 열정이 빠진 사명감은 죽은 것입니다. 따라서 이러한 첫 사랑을 잃어버린 것은 하나님 앞에 크나큰 범죄행위이기에 성서는 첫사랑을 회복하라는 것이며 주의 종들은 첫사랑 그대로를 유지시켜서 무덤까지 가지고가야만 하는 사람들입니다.
오늘날 기독교 부패의 원인은 목회자들에게 있는 것으로 그것은 하나님의 첫사랑을 잃어 버렸기에 일어난 것입니다. 첫사랑은 곧 사명감입니다. 그 사명감은 세상에서 항상 쏟아지는 죄와 악을 이글이글 타는 정열로 태워 없애고 또 한입에 꿀꺽꿀꺽 먹어 삼켜 세상의 죄악을 정화시킬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구약시대 제사장들의 임무중 하나인 백성들을 성결케하는 방법으로 현대의 그리스도인들을 영적으로 성결케 하는 방법입니다.
이제 한국 기독교는 깊은 잠에서 깨어나 세상의 무질서를 하나님의 창조질서인 사랑으로 회복시켜야 하며 어그러진 것, 독주하는 것, 삐뚫어진 것, 추락한 것, 함몰하는 것, 갇혀 있는 것, 뭉개진 것...등 이렇게 세상은 진리가 쇠락함에서 오는 인류에게 닥친 멸망의 징조들을 오직 사랑으로 바로 잡아 놓아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영적으로 성장해야 하며 영적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자기의 것만이 옳다라는 편협된 신앙에서 오는 이단논쟁을 종식시켜야 합니다. 또한 목회자들은 이기와 풍요와 안락을 버리고 오직 첫사랑을 회복하여 세상의 문제가 있는 모든 사람들을 내 눈에 보이고, 듣고, 잡히는 대로 나의 문제처럼 구제와 사랑의 행위와 중보 기도로써 사랑의 싹을 키워 나가야 합니다.
내 아버지시여!
제발 이 편지가 한국 기독교 목회자들의 양심을 깨우는 큰소리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목회자님들은 이 소리를 듣고 잠잠하지 마시고 하나님의 꺼져가는 바램을 저버리지 마시길 간절히 바라는 바입니다. 종종 안부 전해 올리겠습니다.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드나 우리 하나님의 말씀은 영영히 서리라.
할렐루야! 할렐루야! 세세토록 영광홀로 받으소서 - 아 - 멘 -
2006. 11. 23.